33. 골목, 대화

"아, 와, 왔냐?"
"어, 와, 왔어."
"그, 그래 그럼. 하, 할까?"
"어, 어어. 해해해해해해야지?"
"왜왜왜왜왜왜왜 우우웃는 거냐."
"우우우우웃지 않았다고."


34. 히지카타

'할까'라고? 하이고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왜 돌아온 거냐 이 바보자식아! 어른스러움을 발휘했어야지! 평소에는 그렇게 초탈한 척 무심한 척 하고 있었잖아! 아 진짜. 위험하다. 어떻게 하지. 머리 속이 하얗게 비어서 아무것도 생각 안난다. 뭔가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내보라고 해결사!


35. 긴토키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

하세가와 씨. 만약 내가 하세가와 씨한테

마요라 놈이 기다리는 골목에 그 놈과 뒷구멍으로 붕가붕가하기 위해 돌아가야하는데 이걸 하네 못하네 배짱을 부려놓은 탓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미치겠어. 내가 지금 체면을 선택해야하는 걸까 도망치고 싶은 내 본심을 따라야하는 걸까.

-라고 했더라면 하세가와 씨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좀 더 솔직해질 걸 그랬다. 하세가와 씨가 도망가라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난 지금 집 이불 위에 세상 어디에도 없을 편한 마음으로 누워있었을 거라고. 이 바보 얼간이 마다오야!! 난 당신 입에서라면 조금쯤은 도망쳐도 좋지 않을까, 라는 말이 나올줄 알았다고!! 마다오 주제에 왜 그렇게 건실한 충고를 하는 거야!! 이제 남자의 체면만이 아니고 사무라이의 체면까지 걸려들게 생겼잖아!!

미치겠다. 해야하는 건가? 뭐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 거냐, 마요라? 뭐든 생각해내 봐. 부장이라며. 신센구미의 두뇌라며. 뭐라도 좀. 제발. 평생 300엔을 갖다바칠게, 제발.


36. 대화

"그럼. 그. 그러니까. 이제 그. 하, 할까?"
"어. 어어. 어어어어어어."
"그, 그래, 그럼. 지, 진짜로, 할까?
"아까부터 자꾸 왜 그 말만 하는 거야, 마요라. 쪼, 쫄았냐?"
"아니. 아, 안 쫄았다. 네, 네 놈이야말로 말을 더듬는 게 쫀 거 아냐?"
"그, 그건 네 이야기겠지. 전전, 전혀 쫄지 않았다고. 언제라도 오오오올라이트야."
"그, 그러냐?"


37. 히지카타

야 이 바보자식아아아아아!!!


38. 긴토키

내가 미쳤지이이이이이이!!!!


39. 히지카타

차라리 말을 안하는 게 낫겠다. 말을 하면 할 수록 수렁에 빠져들고있다. 그리고 이미 빠져들었다. 혀를 함부로 놀리는 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더니 패가망신은 커녕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끝장나게 생겼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가 않다.

이대로 정말 각오를 굳혀야하는 건가? 이놈하고 이 골목에서 그런 일을 해야하냐고. 난 왜 그때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깟 몇푼 그깟 자존심 그런거 다 버려도 괜찮았잖아. 괜찮았다고. 난 왜 그때 돌아가지 못했냐고.

해결사 놈. 지금이라도 접어주지 않을까나. 지금 너 고민하고 있다는 거 알고있다고. 너 분명, 난 왜 편의점에 갔을때 집에 돌아가지 않았던 것일까 하고 머리 속으로 절규하고 있을 거란 거 알고있다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네 사고방식이랑 내 사고방식은 닮은 것 같거든. 거기에 이왕이면 나보다 좀 더 어른스러웠으면 하거든,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그래.
더 고민해라.
고민하고 고민해서 앞으로 할 10년치의 고민을 여기서 다 끝내버리고 지금 당장 더 나은 어른이 되어라! 어서!


40. 긴토키

저자식 왜 여길 뚫어지게 노려보는 거야? 왜 저렇게 의욕만만? 의욕만만을 넘어서 아주 폭발적인 얼굴인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그런 얼굴인데?

…혹시. 저자식 진짜 할 생각인가. 정말 해버리기로 마음을 굳힌건가. 정리해버렸냐고, 마지막 남아있던 망설임을. 그런거 정리하면 안되잖아. 그런거 정리 안해도 된다고. 사람은 약간 너절한 그런 구석이 있어야 캐릭터가 깊어진단 말이야. 너무 맑은 물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단 말도 못들어봤어? 어이!

저쪽이 진짜 할 생각이라면 내 쪽도 이제 도망칠 수가 없는데. 같이 망설이고 있을때라면 모를까, 한쪽이 결단을 내려버린 뒤에 발을 빼면 그건 어떻게도 빼도박도 못하고 지는 게 되잖아. 아 좀…. 난 정말….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결단을 내려주마. 그래 좋다. 하자. 까짓거 해치워 버리자. 네 놈이 그렇게 강하게 나온다고 내가 도망칠 줄 알았냐? 웃기지 말라 이거다. 여기서 도망칠 거면 편의점에서 진작 도망쳤어 인마!

후.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나니 차라리 개운한데? 좋아, 이제 정말 오케이라고. 사람이란게 포기하고 나면 뭐든 편해진다던데 이게 바로 그건가 보지? 그래. 이렇게 된거, 해주마. 대신 절대 양보 못하는 게 있다.

내가 절대 위다.


41. 히지카타

저자식 왜 갑자기 얼굴에 활기가 도는 거야? 혹시 뭔가 생각이 났나? 구명줄 찾은 거야? 너를 내가 믿어도 되겠냐?


42. 대화

"어이."
"그래. 뭐냐."
"후딱 해치워버리자. 얼른 옷 걷어."
"…뭐?"


43. 히지카타

야 내가 어른이 되라고 했지 언제 그런 결심을 하라고 그랬어어어!!!


44. 대화

"어서 해버리자, 마요라."
"…할 거냐?"
"그래서 콘돔 사온 거잖아? 안 할거야?"
"아니. 해. 하긴 하는데."


45. 히지카타

이 자식 갑자기 사람이 변했어어어어!!!

나 지금 엄청 밀리는 상황? 내가 지고있는 거냐? 안되지, 그건!

…하하하하지만 도저히 그런 결심은 안선다고! 저자식은 뭐 때문에 저렇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비결 좀 알려주라. 마지막 선을 정리할 수 있는 그 비결을! 너랑 나랑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지게 된 거야?

어쨌거나 지금 이 흐름으로 가면 좋지 않다. 일단 고쳐야한다, 이 흐름을. 이 올바르지 않은 흐름을. 대체 어디부터 잘못됐길래 이 지경이 된 거지?

…….

진짜 어디부터 잘못된 거냐….

어디부터지? 담배가 다 떨어졌는데 안 돌아갔을 때? 저녀석에게 돈을 쥐어주고 편의점에 보냈을 때? 이 골목에 들어와 버렸을 때? 술김에 해보자는 말을 해버렸을 때? 그것도 아니면 저자식이랑 합석을 했을 때?

그래. 거기서부터 잘못됐다. 그때 합석을 허락하면 안됐었다. 누구든 뭐 어떠랴 하는 생각에 보지도 않고 허락했더니 그게 저 놈이었을 줄이야. 이건 주인장의 음모인가? 그 주인장, 아무리 생각해도 대화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마지막에 저놈이랑 내가 나가는 걸 만류하지 않았던 거야? 오히려 떠밀었잖아? 젠장, 거기 내가 다신 가나 봐라. 다음 오프 때라도 당장 다른 가게 찾는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도, 이자식이랑 알게 된 시점에서 이미 뭔가가 잘못됐다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카츠라 자식, 왜 하필 그 날 그 시각 그 장소에 이런 놈이랑 같이 있었냐고! 이런 놈 없어도 테러할 수 있었잖아! 신센구미로서 지금 뭔가 이상한 발언을 한 것 같지만 그건 그냥 넘기겠어!

미친다. 뭘 바로 잡아야할지 그걸 모르겠어. 저 놈이 갑자기 의욕에 넘치게 된 그 계기만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 계기가 대체 뭔지 감이 안잡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해결사? 네 머리 속에서 무슨 구조개혁이 있었던 거냐?

잠깐. 그런데 아까 네 놈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 옷 걷으라고 했었냐?

…잠깐, 뭐? 옷을 걷어? 그거 혹시 나보고 아래를 하라는 의미? 이 놈이 진짜 미쳤나!


46. 대화

"너 아까 나한테 옷 걷으라 그랬냐?"
"너 그럼 안 걷고 할 거냐? 아, 다 벗고 하시겠다고?"
"……."


47. 히지카타

해결사 네놈자식 편의점에 가서 대체 뭘 먹고 온거야!!!


48. 대화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지. 옷을 걷어야하는 건 네 놈 쪽이겠지?"
"뭐?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옷을 걷어? 난 그냥 지퍼만 살포시 내려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왜 당연한 듯이 네가 그쪽 역할인양 구는 거냐고! 그건 내가 맡을 역이다!"
"대체 무슨 웃기는 소리야? '당연한 듯이'가 아니고 당연히 내가 위겠지!"
"너야말로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냐! 당연히 내가 위지. 너 지금 나한테 밑으로 가라고 하는 거냐, 아앙?"
"아니지요, 내가 위인 게 당연하지요-? 내가 위잖아. 너 나한테 졌잖아. 칼 부러졌었잖아. 내 칼이 더 강하다고. 그러니까 내가 위지."
"그거 네 칼이 아니거든? 그때 네가 썼던 칼은 소고 거였거든? 그보다도 네 칼이 더 강한 거랑 지금 위 아래랑 그 둘이 대체 무슨 상관이야? 아니. 네가 더 강한 거 아니거든. 진 거 아니거든. 그건 단지 칼이 부러졌던 거 뿐이거든. 마음이 부러지지 않는 한 진 게 아니거든."
"인정하지? 네 마음은 그때 똑 부러졌어. 네 그 자존심하고 같이 똑 부러졌다고. 부러졌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도 그냥 내 바주카를 맞고 허리를 똑 부러뜨리세요, 요녀석아."
"부러지지 않았다고 말하잖아!! 그보다 똑 부러질 때까지 박을 거냐! 남의 허리를 뭐로 보는 거야!"
"걱정마! 네가 정 그렇다면 똑 부러질 때까지 박지는 않을게! 적당히 박아 줄게! 처음이라 과연 기분좋게 박아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 몸과 마음이 부러지지 않는 정도까지만 박아줄게!"
"박히는 시점에서 이미 마음이 부러지거든!"
"넌 그런 가혹한 짓을 긴토키 씨한테 강요하고 있는 거냐? 마음이 부러지는 그런 짓을 긴토키 씨한테 하려고 하는거냐고. 아저씨는 모진 세월 풍파에 모가 닳아서 마음이 이미 동그랗게 됐거든요? 마음의 상처를 너무나도 무수히 입어서 표면이 매끈매끈해질 지경이 됐거든요? 그런 불쌍한 아저씨의 마음을 한번 더 똑 부러뜨리려고 하다니 요새 젊은이들은 진짜 무서워!"
"너랑 나랑 나이차이 별로 안난다고 보거든!!"
"넌 이미 해봐서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모두의 긴토키 씨는 지금 죽을 맛이거든요오오? 이런 긴토키 씨가 처음부터 하드한 경험을 하게 두지는 않겠지이이? 너도 인간이라면 부탁이니까 내가 쳐 넣게 해줘! 300엔 줄게! 아, 이거 위험발언? 300엔 주면서 그런걸 부탁하면 잡혀갈지도 모르니까 300엔은 안 줄게! 아참, 바로 네놈이 경찰이었지. 너도 공범이니까 부디 잊어주라, 이 발언. 이건 300엔 줘도 괜찮은 부탁이겠지."
"무슨 범죄를 모의하는 거야! 그 300엔 뇌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 기억해둬! 아니 그런 얘들 간식값같은 돈으로 누굴 매수하려고 하지마, 나잇살 쳐먹었다면 좀!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액수를 준다고 해도 난 안받겠지만! 그 전에 누가 이미 해봤다는 거야 말했는지 안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나도 안해봤다 이자식아!!"


49. 열받은 긴토키

"아, 이제 시끄러워! 쳐넣게 해줄거야 말거야?!"


50. 그리고

"……."
"……."


51. 침묵



B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